바가바드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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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7,647회 작성일 12-12-11 15:56본문
Ⅰ. 머리말
이 과제를 준비하면서 필자는‘bhakti\'에 대한 생각이 다시 정리되었다. 어떤 근거에서였는지는 명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bhakti’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필자에게 이 의미는‘봉사’, ‘희생’이란 뜻으로 [남을 위해 행하는 봉사]였다. 즉, ‘남’을 통한 수행이었다. 그 다음, 바가바드기타를 읽은 후에는 [종교적 의미의 신에 대한 헌신]으로 그 의미를 받아들였다.‘신’에 대한 수행으로 받아들여서일까 이때부터 필자는‘bhakti’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마저 가졌다. 그리고 지금은 [진리를 향한 자비]다. 이제 ‘bhakti’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진리’를 향한 수행이다.
필자의 이러한 생각을 간디와 [바가바드기타 12장]을 중심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으로 이 글을 얽어가고자 한다.
‘Bhakti’를 이야기하기 전에 필자가 가지고 있는 진리와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 순서일 듯싶다. 왜냐하면 필자는‘Bhakti’를 진리의 실천으로 보기 때문이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그것을 향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그것이 무엇이든 진리는 있다고 믿으며, 세상의 진리를 향한 모든 표현은 결국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다만, 그 진리의 표현이 다양할 뿐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는지 설명할 수 없기에 이 생각에 자신이 없었는데 새로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힘을 얻게 되었다.
‘元曉(617~686)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다른 사람의 뜻은 모두 부처님의 뜻이며, 百家의 학설이 옳지 않음이 없고, 팔만
가지 법문이 모두 가히 이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경전은 컨텍스트 속에 놓여있는/담겨있는 원음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원음은 진리라 봐도 될 듯싶다. 즉, 원음을 담은 경전에는 원음만이 아닌, 그 때의 컨텍스트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위의 예문이 불교에 관련된 것이라면 다음은 간디의 진리관과 서양 종교관에 관한 예문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전세계의 모든 종교가 말하는 근본 진리를 믿는다. 모든 종교는 신에게서 받은 것이며, 그런 종교를 계시받았던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이라 믿는다. 상이한 성전들을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기본적으로 모든 성전이 결국 한가지이며 서로 보탬이 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능하신 신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다양한 문화의 조건에 따라 적절하게 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하는 종교 다원주의(신중심적 다원주의)는 신의 개시가 문화나 역사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옥을 입고 표현되기에 상이한 내용과 특징을 지닐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나의 진리를 놓고, 보는 방식과 구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을 가지고 종교 간에 배타성을 갖는 것과 인간의 사회, 정치적인 목적 속에서 다름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과정으로 종교와 철학의 모습이 변해왔다는 생각에 종교를 거부했고, 나아가 종교적 신이란 단지, 먼저 진리를 깨달은 스승이자, 선구자로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일 뿐인데, 유일 신격화한다는 생각에 종교적 신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이는 아마도 필자가 부족했기에 그 속에서 진리를 찾기보다는 사람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bhakti\'를 종교적 신에 대한 헌신으로 보았을 때,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다.
진리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필자의 생활 전체에 영향을 주어 무엇을 접하든 그것이 갖고 있는 배경을 분리해서 보는 습관이 있다. 이에 [바가바드기타] 역시, 그것이 가졌던 컨텍스트를 나름대로 분리해 읽음으로써 진리를 향하는 구절들이 가슴 절절이 다가왔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 범주 안에서 필자가 생각하는‘bhakti\'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Ⅱ. [바가바드기타]속의‘bhakti’
1. [바가바드기타]의 성립 과정
[바가바드기타] 속에서의‘bhakti’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바가바드기타]라는 컨텍
스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에 [바가바드기타]의 성립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바가바드기타]의 내용적 배경이 되는 [마하바라타]의 성립 과정을 주해신이 옮긴 [마하바라타]에서 요약,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위대한 성자 파라사라의 아들로 마하바라타를 생각해 낸 비야사는 이를 전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창조주 브라만에게 묵념을 올리고, 현신한 브라만의 권유로 가나파티에게 묵념하여 그가 나타나 이를 기록하게 되고, 이것이 점점 사람들에게 전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이어져왔다’
이는 [마하바라타]가 쓰여지기 이전부터 진리를 향한 수행이 있었고, 대상이 창조주 브라만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것이 성자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 경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가바드기타]의 성립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기원전 4 - 5세기로 추정하는데, 역사적 상황을 좀 살펴보면, 크샤트리아 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배력을 다지기 위해 브라흐만 사제 계급을 견제하면서 브라흐만 계급은 위축된 자기 세력의 부흥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에 기존의 교리에 새로운 수정을 가하면서 대중화의 길을 모색하는데, 그것이‘박티’개념과 불교, 자이나교와 같은 신흥 종교의 방법을 받아들여 둘 다 자신들의 교리에 채택하고 이의 근거를 베다 속에서 찾음으로써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왕권 강화를 위한 새로운 이념을 찾던 굽타 왕조는 이를 받아들이고, <바가바타 종교>를 옹호하며 자신들을 비슈뉴와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바가바타종교>는 [바가바드기타]에 나타난 크리슈나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다음에서도 살필 수 있다.
‘Hastings, J.에 의하면... 아리안족의 크샤트리아 계급이 성장하여.. 브라흐만의 著作에 대해 비판하며 일원 유신론을 형성, 발전시키며 이 흐름의 대표적인 종교가 <바가바타 종교>다. 이 종교의 개시자는 크샤트리아 계급인 <크리쉬나>로 후에 이 종교의 숭배 대상인 크리쉬나를 <바가바트> 라 부르게 된다. 이 종교가 인도 철학 속에서 융합되면서 <크리쉬나>는 고대 베다의 태양신인 <비슈뉴>와 동일시되고, [바가바드기타]에 이르러서 그 결정적 형태를 드러낸다 ’
‘[바가바드기타]는‘bhakti’에 대한 근대적 이론화의 과정이었다. [바가바드기타]는 <박티종교>의 학문적 주해로써 가장 먼저 고안되었다.’
이는 [바가바드기타]가‘bhakti’를 중시하는 <박티 종교>의 경전으로 당시 인도에서 자리매김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원래 전해지던 <마하바라타> 속의 [바가바드기타]였을 내용이 당시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bhakti’의 부분이 더 강조되어 현재의 [바가바드기타]로 전해졌을 여지는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기타 안에는 상키야, 요가, 베단타 철학의 증거가 보인다. 이는 이들 철학을 자유롭게 묘사한다는 이유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들 철학이 [바가바드기타]의 성립시기에 아직 그들의 체계적 형태를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가바드기타]안에는 위에서 제시한 철학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일맥을 찾고자한다면 모순됨에 부딪치고 혼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바가바드기타]가 진리를 향한 모든 입장을 거론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즉, 진리를 향한 모든 방법이 이 안에 있음을 느낀다. 이의 역사적 성립 배경에서도 알 수 있지만 기존의 교리에 당시 대중들 속으로 융화되는 방법들을 모두 흡수했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재까지도 진리를 향해 가는 자들에게 [바가바드기타]가 사랑받는 것이며 살아있는 진리 지침서가 될 수 있는 것이라 사료된다. 이에 [바가바드기타]에서 일맥상통한 분석적 체계성을 찾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뜻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간디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그토록 [바가바드기타]를 소중히 그의 지침서로 여기고 대중화시키려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바가바드기타]속의 ‘bhakti\'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가바드기타]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바가바타종교>와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당시 [바가바드기타]에서의‘bhakti’는 이 종교의 신에 대한 헌신이다.
이 종교의 신이 바로 <비슈누>이다. Krishna Sharma [Bhakti and the Bhakti Movement]에 내용을 요약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바가바드기타]는 vaishnava 텍스트이며 ‘bhakti’는 인격신적 믿음에서 가장 먼저 시도된 표현으로 일반 개념의 ‘bhakti\' 를 힌두공론 안에서 특수화시켰다’
결국 [바가바드기타]의‘bhakti’가 인도에서 대중화되어 현재까지 계승되는 힌두이즘 속에서는‘<비슈누>신에 대한 사랑, 헌신, 봉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에 따라‘bhakti’의 대상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가바드기타] 속의‘bhakti’는‘절대자 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보는 것이 의의가 없을 듯 하다.
Ⅲ. 실천적 독서법에 의한‘Bhakti’
1. 간디의‘Bhakti’
간디는 진리를 굳게 믿고, 신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실천으로 아힘사, 사티아그라하를 통한 대중적 진리 실천 운동을 했으며 자신에게 철저히 브라흐마챠라를 수행해갔다. 이러한 간디에게 [바가바드기타]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기타]는 완전한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내 모든 難문제와 시련에 대해 미리 준비되어 있는 해답을 얻기 위해 나는 이 행동의 사전을 찾았다.’
그의 행동의 지침서였던 [바가바드기타]에 대해 간디는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의 철학 안에서 그만의 해석을 통한 독특한 방법을 취했다. [기타]에서의 전쟁을 우리 안에 있는 선과 악의 전쟁으로 보는 상징주의적 해설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곧, 자신의 삶은 신의 뜻대로 행해지는 것이었고, 자신의 작은 행동조차 신에게 바치는 행위여야 한다고 여겼던 간디에게 [바가바드기타]의‘bhakti’는 곧 삶 자체였을 것이다. 더불어 이를 행하는 지침이 되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나는 하느님은 오직 봉사를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봉사의 종교를 내 종교로 삼은 것이었다... 그것은 저절로 내게 온 것이다.’
필자는 간디의 철학에 공감한다. 하지만‘신’이라는 표현이 주는 한계성 때문에 의미상으로는 공감하지만 표현상으로는 이를‘진리’로 바꿀 때 동의한다. 간디 역시 혼용하여 사용한 듯 보이기도 하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 지극히 높으신 본체가 계시어서 그 불확실, 일시적인 뒤에 확실로 숨어 계신다.. (중략).. 진리의 탐구야말로 인생의 지향선이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불확실하고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 안에는‘진리’가 편재해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그 진리를 향해 가는 길이 참인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길이 곧 간디의‘bhakti\'의 길이었고, 이것이 그에게는 아힘사로 나타났다고 본다.
‘아힘사는 포괄적인 진리다. 우리는 힘사의 불길 속에 갇힌 무력한 인간들이다. 생명으로 산다는 말은 그 속에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의식으로나 무의식으로나 외견상으로 살생을 범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즉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그것이 비록 매우 작을지라도 필연적으로 어떤 힘사, 곧 생명의 파괴를 가져오게 한다. 아힘사의 밑바닥에는 모든 생명의 통일성이 놓여있으므로 하나의 잘못은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살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아힘사의 신자는 그의 모든 행동의 원천이 자비심에 있기만 하면 그의 있는 힘을 다하여 지극히 작은 생명 하나라도 살해하지 않고 그것을 구해주려고 애쓴다면 제 신앙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간디에게‘bhakti’의 대상은‘진리’였고, 그에게‘진리’는 모든 대상이었다. 결국 그에게 ‘bhakti\'는 작은 것이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사랑을 베풀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자비심이라 사료된다. 나의‘bhakti’에 대한 의미가 [진리를 향한 자비]라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이에 필자는‘bhakti’가 간디의 중심 철학인 아힘사와 진리 실천의 기반이자 모태였다고 생각한다.
2. [바가바드기타 12장]의‘Bhakti’
[바가바드기타]에 대해 역대 인도의 종교가, 사상가들의 해석을 자세히 살펴보진 못했지만 미약하나마 접한 라마누자, 샹카라, 마드바, 틸락, 오르빈도, 간디의 주장이 각기 다른 것만 봐도 각자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주장들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필자는 이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가바드기타]가 진리를 향한 모든 입장을 거론하고 있다고 보는 필자의 견해로는‘진리를 향한다는 근본적 공통점 속에 방법적 다양함을 인정하고, 제시한 것이 [바가바드기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룰 12장의 의미 파악과 그 속에서의‘bhakti’는 필자의 견해라는 점을 다시 밝힌다.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필자의 견해를 정리하는 차원임으로 오해가 없길 바란다.
12장의 내용 속에서‘bhakti\'를 생각해보기에 앞서, 12장의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목에서부터 <믿음행자편>이다. 진리 추구의 다양함이라는 [바가바드기타] 속에서‘bhakti’가 중점적으로 거론되는 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궁극의 목적으로 가는 길로 무엇보다‘bhakti’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 먼저, 필자가 가지고 있는‘bhakti’, ‘jñāna’, ‘karma’의 생각을 간단하게 이야기할까 한다.
‘bhakti’는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써 외부 대상에게 자비를 베푸는 길>이고‘jñāna’는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이고‘karma’는 <진리를 향해 갈 수 있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형성하는 길> 이라고 미흡하지만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져본다. 또한, 이 셋은 각자의 독립된 길이면서 또한 서로 협력체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길에 우위는 없으며, 한 가지 길만으로 궁극에 이를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각자의 컨텍스트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질 뿐이다.
그렇기에‘bhakti’는 <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대상을 두고 그 대상을 명상하고 숭배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대상을‘신’으로만 보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진리이며, 세상 만물이다. 이것이 <지혜의길>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미현현이 진리이며 간디의 신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통하지 않는 <지혜의길>은 궁극의 목적에 이를 수 있으나 인간이기에 더 어렵다고 12장에서 말하고 있다. 이 둘은 또한 각각의 장 속에서 각자의 길을 위한 <행위의길>를 제시하는데, 제시된 게송들의 유사성을 살필 수 있다. <지혜행자편> 2장 55 - 71송과 <믿음행자편> 12장 13 - 20송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는 2장 56송과 12장 17송을 보면,
‘마음이 슬픔에 흔들리지 않고 기쁨에 치닫지 않는 사람, 정욕과 두려움과 분노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 말로 확실한 깨달음에 이른 고행자라 부를 수 있도다’
(2장 56송)
‘기뻐하지도 않고 안달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 사람, 턱없이 욕심부리지 않는 사람, 선과 악을 함께 버린 사람, 그렇게 자신을 내게 바친 사람이 나의 소중한 자다’
(12장17송)
두 게송만 보더라도 이들의 유사성을 가히 짐작하고 남음이다. 간디가 [바가바드기타]에서가장 감명 받은 부분이 2장 55 - 72송이라고 한다. 이는 <지혜행자편>의 <행위의 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간디는‘Bhakti\'를 삶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믿음의 길>과 <지혜의 길>은 모순되는 길이 아니라, 일맥상통하는 길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Ⅳ. 맺음말
필자가 이 글에서 쓰고자 한 것은 bhakti\'를 읽는 필자의 견해를 정리하고자 함이었다. 이에 수반되는 이야기로 간디의 해석을 통한 필자의 진리관과 이 진리관 속에서 [바가바드기타]의 의미였다.
진리는 불멸하는 것이고, 두루 편재해 있는 것이다. 또한,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체험한 자 역시, 그것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줄 수 없고, 그들의 표현 또한 이를 받아들이는 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에 진리를 보되, 진리를 대변하는 것을 보지 말자는 것이 나의 진리에 대한 생각이다.
이에 [바가바드기타]를 접함에, 쓰여질 당시의 시간적 배경, 힌두라는 공간적 배경이 아닌, 오늘 우리의 컨텍스트로 해석하고, 이의 외부적 컨텍스트를 분리해, 그 안에 담긴 진리를 향한 구절들로 읽는 것이다.
그렇기에‘bhakti\' 역시 <진리에 대한 자비>로 보고 있으며‘jñāna’는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로, ‘karma’는 <진리를 향해 갈 수 있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형성하는 길> 로 여기고 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정립된 상태는 아니지만 출발점의 세 가지 길로, 종국에는 상호유기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특히 대상은 있고 나는 없는 ‘bhakti’와 나는 있고 대상은 없는‘jñāna’에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이기에 ‘karma’가 필요하고 [바가바드기타] 역시 이를 제시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bhakti\' 와 ‘jñāna’의 길도 서로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바가바드기타]를 볼 때, 시공간을 초월하는, 다양한 대상을 포섭하는 진리의 지침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장된 해석일 수 있지만 이는 [바가바드기타]의 가르침, 특히‘bhakti’의 가르침이 대중화되길 바라는 필자의 마음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더불어 ‘bhakti’가 누구에게나 생활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길이 모색되길 바란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모든 대상을 소중한 나와 같은 존재로 볼 때, 거칠어진 우리의 모습은 순화될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참고문헌
이 과제를 준비하면서 필자는‘bhakti\'에 대한 생각이 다시 정리되었다. 어떤 근거에서였는지는 명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bhakti’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필자에게 이 의미는‘봉사’, ‘희생’이란 뜻으로 [남을 위해 행하는 봉사]였다. 즉, ‘남’을 통한 수행이었다. 그 다음, 바가바드기타를 읽은 후에는 [종교적 의미의 신에 대한 헌신]으로 그 의미를 받아들였다.‘신’에 대한 수행으로 받아들여서일까 이때부터 필자는‘bhakti’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마저 가졌다. 그리고 지금은 [진리를 향한 자비]다. 이제 ‘bhakti’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진리’를 향한 수행이다.
필자의 이러한 생각을 간디와 [바가바드기타 12장]을 중심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으로 이 글을 얽어가고자 한다.
‘Bhakti’를 이야기하기 전에 필자가 가지고 있는 진리와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 순서일 듯싶다. 왜냐하면 필자는‘Bhakti’를 진리의 실천으로 보기 때문이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그것을 향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그것이 무엇이든 진리는 있다고 믿으며, 세상의 진리를 향한 모든 표현은 결국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다만, 그 진리의 표현이 다양할 뿐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는지 설명할 수 없기에 이 생각에 자신이 없었는데 새로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힘을 얻게 되었다.
‘元曉(617~686)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다른 사람의 뜻은 모두 부처님의 뜻이며, 百家의 학설이 옳지 않음이 없고, 팔만
가지 법문이 모두 가히 이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경전은 컨텍스트 속에 놓여있는/담겨있는 원음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원음은 진리라 봐도 될 듯싶다. 즉, 원음을 담은 경전에는 원음만이 아닌, 그 때의 컨텍스트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위의 예문이 불교에 관련된 것이라면 다음은 간디의 진리관과 서양 종교관에 관한 예문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전세계의 모든 종교가 말하는 근본 진리를 믿는다. 모든 종교는 신에게서 받은 것이며, 그런 종교를 계시받았던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이라 믿는다. 상이한 성전들을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기본적으로 모든 성전이 결국 한가지이며 서로 보탬이 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능하신 신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다양한 문화의 조건에 따라 적절하게 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하는 종교 다원주의(신중심적 다원주의)는 신의 개시가 문화나 역사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옥을 입고 표현되기에 상이한 내용과 특징을 지닐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나의 진리를 놓고, 보는 방식과 구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을 가지고 종교 간에 배타성을 갖는 것과 인간의 사회, 정치적인 목적 속에서 다름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과정으로 종교와 철학의 모습이 변해왔다는 생각에 종교를 거부했고, 나아가 종교적 신이란 단지, 먼저 진리를 깨달은 스승이자, 선구자로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일 뿐인데, 유일 신격화한다는 생각에 종교적 신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이는 아마도 필자가 부족했기에 그 속에서 진리를 찾기보다는 사람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bhakti\'를 종교적 신에 대한 헌신으로 보았을 때,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다.
진리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필자의 생활 전체에 영향을 주어 무엇을 접하든 그것이 갖고 있는 배경을 분리해서 보는 습관이 있다. 이에 [바가바드기타] 역시, 그것이 가졌던 컨텍스트를 나름대로 분리해 읽음으로써 진리를 향하는 구절들이 가슴 절절이 다가왔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 범주 안에서 필자가 생각하는‘bhakti\'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Ⅱ. [바가바드기타]속의‘bhakti’
1. [바가바드기타]의 성립 과정
[바가바드기타] 속에서의‘bhakti’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바가바드기타]라는 컨텍
스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에 [바가바드기타]의 성립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바가바드기타]의 내용적 배경이 되는 [마하바라타]의 성립 과정을 주해신이 옮긴 [마하바라타]에서 요약,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위대한 성자 파라사라의 아들로 마하바라타를 생각해 낸 비야사는 이를 전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창조주 브라만에게 묵념을 올리고, 현신한 브라만의 권유로 가나파티에게 묵념하여 그가 나타나 이를 기록하게 되고, 이것이 점점 사람들에게 전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이어져왔다’
이는 [마하바라타]가 쓰여지기 이전부터 진리를 향한 수행이 있었고, 대상이 창조주 브라만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것이 성자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 경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가바드기타]의 성립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기원전 4 - 5세기로 추정하는데, 역사적 상황을 좀 살펴보면, 크샤트리아 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배력을 다지기 위해 브라흐만 사제 계급을 견제하면서 브라흐만 계급은 위축된 자기 세력의 부흥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에 기존의 교리에 새로운 수정을 가하면서 대중화의 길을 모색하는데, 그것이‘박티’개념과 불교, 자이나교와 같은 신흥 종교의 방법을 받아들여 둘 다 자신들의 교리에 채택하고 이의 근거를 베다 속에서 찾음으로써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왕권 강화를 위한 새로운 이념을 찾던 굽타 왕조는 이를 받아들이고, <바가바타 종교>를 옹호하며 자신들을 비슈뉴와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바가바타종교>는 [바가바드기타]에 나타난 크리슈나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다음에서도 살필 수 있다.
‘Hastings, J.에 의하면... 아리안족의 크샤트리아 계급이 성장하여.. 브라흐만의 著作에 대해 비판하며 일원 유신론을 형성, 발전시키며 이 흐름의 대표적인 종교가 <바가바타 종교>다. 이 종교의 개시자는 크샤트리아 계급인 <크리쉬나>로 후에 이 종교의 숭배 대상인 크리쉬나를 <바가바트> 라 부르게 된다. 이 종교가 인도 철학 속에서 융합되면서 <크리쉬나>는 고대 베다의 태양신인 <비슈뉴>와 동일시되고, [바가바드기타]에 이르러서 그 결정적 형태를 드러낸다 ’
‘[바가바드기타]는‘bhakti’에 대한 근대적 이론화의 과정이었다. [바가바드기타]는 <박티종교>의 학문적 주해로써 가장 먼저 고안되었다.’
이는 [바가바드기타]가‘bhakti’를 중시하는 <박티 종교>의 경전으로 당시 인도에서 자리매김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원래 전해지던 <마하바라타> 속의 [바가바드기타]였을 내용이 당시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bhakti’의 부분이 더 강조되어 현재의 [바가바드기타]로 전해졌을 여지는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기타 안에는 상키야, 요가, 베단타 철학의 증거가 보인다. 이는 이들 철학을 자유롭게 묘사한다는 이유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들 철학이 [바가바드기타]의 성립시기에 아직 그들의 체계적 형태를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가바드기타]안에는 위에서 제시한 철학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일맥을 찾고자한다면 모순됨에 부딪치고 혼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바가바드기타]가 진리를 향한 모든 입장을 거론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즉, 진리를 향한 모든 방법이 이 안에 있음을 느낀다. 이의 역사적 성립 배경에서도 알 수 있지만 기존의 교리에 당시 대중들 속으로 융화되는 방법들을 모두 흡수했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재까지도 진리를 향해 가는 자들에게 [바가바드기타]가 사랑받는 것이며 살아있는 진리 지침서가 될 수 있는 것이라 사료된다. 이에 [바가바드기타]에서 일맥상통한 분석적 체계성을 찾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뜻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간디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그토록 [바가바드기타]를 소중히 그의 지침서로 여기고 대중화시키려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바가바드기타]속의 ‘bhakti\'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가바드기타]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바가바타종교>와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당시 [바가바드기타]에서의‘bhakti’는 이 종교의 신에 대한 헌신이다.
이 종교의 신이 바로 <비슈누>이다. Krishna Sharma [Bhakti and the Bhakti Movement]에 내용을 요약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바가바드기타]는 vaishnava 텍스트이며 ‘bhakti’는 인격신적 믿음에서 가장 먼저 시도된 표현으로 일반 개념의 ‘bhakti\' 를 힌두공론 안에서 특수화시켰다’
결국 [바가바드기타]의‘bhakti’가 인도에서 대중화되어 현재까지 계승되는 힌두이즘 속에서는‘<비슈누>신에 대한 사랑, 헌신, 봉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에 따라‘bhakti’의 대상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가바드기타] 속의‘bhakti’는‘절대자 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보는 것이 의의가 없을 듯 하다.
Ⅲ. 실천적 독서법에 의한‘Bhakti’
1. 간디의‘Bhakti’
간디는 진리를 굳게 믿고, 신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실천으로 아힘사, 사티아그라하를 통한 대중적 진리 실천 운동을 했으며 자신에게 철저히 브라흐마챠라를 수행해갔다. 이러한 간디에게 [바가바드기타]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기타]는 완전한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내 모든 難문제와 시련에 대해 미리 준비되어 있는 해답을 얻기 위해 나는 이 행동의 사전을 찾았다.’
그의 행동의 지침서였던 [바가바드기타]에 대해 간디는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의 철학 안에서 그만의 해석을 통한 독특한 방법을 취했다. [기타]에서의 전쟁을 우리 안에 있는 선과 악의 전쟁으로 보는 상징주의적 해설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곧, 자신의 삶은 신의 뜻대로 행해지는 것이었고, 자신의 작은 행동조차 신에게 바치는 행위여야 한다고 여겼던 간디에게 [바가바드기타]의‘bhakti’는 곧 삶 자체였을 것이다. 더불어 이를 행하는 지침이 되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나는 하느님은 오직 봉사를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봉사의 종교를 내 종교로 삼은 것이었다... 그것은 저절로 내게 온 것이다.’
필자는 간디의 철학에 공감한다. 하지만‘신’이라는 표현이 주는 한계성 때문에 의미상으로는 공감하지만 표현상으로는 이를‘진리’로 바꿀 때 동의한다. 간디 역시 혼용하여 사용한 듯 보이기도 하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 지극히 높으신 본체가 계시어서 그 불확실, 일시적인 뒤에 확실로 숨어 계신다.. (중략).. 진리의 탐구야말로 인생의 지향선이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불확실하고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 안에는‘진리’가 편재해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그 진리를 향해 가는 길이 참인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길이 곧 간디의‘bhakti\'의 길이었고, 이것이 그에게는 아힘사로 나타났다고 본다.
‘아힘사는 포괄적인 진리다. 우리는 힘사의 불길 속에 갇힌 무력한 인간들이다. 생명으로 산다는 말은 그 속에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의식으로나 무의식으로나 외견상으로 살생을 범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즉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그것이 비록 매우 작을지라도 필연적으로 어떤 힘사, 곧 생명의 파괴를 가져오게 한다. 아힘사의 밑바닥에는 모든 생명의 통일성이 놓여있으므로 하나의 잘못은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살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아힘사의 신자는 그의 모든 행동의 원천이 자비심에 있기만 하면 그의 있는 힘을 다하여 지극히 작은 생명 하나라도 살해하지 않고 그것을 구해주려고 애쓴다면 제 신앙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간디에게‘bhakti’의 대상은‘진리’였고, 그에게‘진리’는 모든 대상이었다. 결국 그에게 ‘bhakti\'는 작은 것이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사랑을 베풀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자비심이라 사료된다. 나의‘bhakti’에 대한 의미가 [진리를 향한 자비]라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이에 필자는‘bhakti’가 간디의 중심 철학인 아힘사와 진리 실천의 기반이자 모태였다고 생각한다.
2. [바가바드기타 12장]의‘Bhakti’
[바가바드기타]에 대해 역대 인도의 종교가, 사상가들의 해석을 자세히 살펴보진 못했지만 미약하나마 접한 라마누자, 샹카라, 마드바, 틸락, 오르빈도, 간디의 주장이 각기 다른 것만 봐도 각자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주장들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필자는 이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가바드기타]가 진리를 향한 모든 입장을 거론하고 있다고 보는 필자의 견해로는‘진리를 향한다는 근본적 공통점 속에 방법적 다양함을 인정하고, 제시한 것이 [바가바드기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룰 12장의 의미 파악과 그 속에서의‘bhakti’는 필자의 견해라는 점을 다시 밝힌다.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필자의 견해를 정리하는 차원임으로 오해가 없길 바란다.
12장의 내용 속에서‘bhakti\'를 생각해보기에 앞서, 12장의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목에서부터 <믿음행자편>이다. 진리 추구의 다양함이라는 [바가바드기타] 속에서‘bhakti’가 중점적으로 거론되는 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궁극의 목적으로 가는 길로 무엇보다‘bhakti’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 먼저, 필자가 가지고 있는‘bhakti’, ‘jñāna’, ‘karma’의 생각을 간단하게 이야기할까 한다.
‘bhakti’는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써 외부 대상에게 자비를 베푸는 길>이고‘jñāna’는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이고‘karma’는 <진리를 향해 갈 수 있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형성하는 길> 이라고 미흡하지만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져본다. 또한, 이 셋은 각자의 독립된 길이면서 또한 서로 협력체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길에 우위는 없으며, 한 가지 길만으로 궁극에 이를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각자의 컨텍스트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질 뿐이다.
그렇기에‘bhakti’는 <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대상을 두고 그 대상을 명상하고 숭배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대상을‘신’으로만 보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진리이며, 세상 만물이다. 이것이 <지혜의길>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미현현이 진리이며 간디의 신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통하지 않는 <지혜의길>은 궁극의 목적에 이를 수 있으나 인간이기에 더 어렵다고 12장에서 말하고 있다. 이 둘은 또한 각각의 장 속에서 각자의 길을 위한 <행위의길>를 제시하는데, 제시된 게송들의 유사성을 살필 수 있다. <지혜행자편> 2장 55 - 71송과 <믿음행자편> 12장 13 - 20송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는 2장 56송과 12장 17송을 보면,
‘마음이 슬픔에 흔들리지 않고 기쁨에 치닫지 않는 사람, 정욕과 두려움과 분노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 말로 확실한 깨달음에 이른 고행자라 부를 수 있도다’
(2장 56송)
‘기뻐하지도 않고 안달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 사람, 턱없이 욕심부리지 않는 사람, 선과 악을 함께 버린 사람, 그렇게 자신을 내게 바친 사람이 나의 소중한 자다’
(12장17송)
두 게송만 보더라도 이들의 유사성을 가히 짐작하고 남음이다. 간디가 [바가바드기타]에서가장 감명 받은 부분이 2장 55 - 72송이라고 한다. 이는 <지혜행자편>의 <행위의 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간디는‘Bhakti\'를 삶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믿음의 길>과 <지혜의 길>은 모순되는 길이 아니라, 일맥상통하는 길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Ⅳ. 맺음말
필자가 이 글에서 쓰고자 한 것은 bhakti\'를 읽는 필자의 견해를 정리하고자 함이었다. 이에 수반되는 이야기로 간디의 해석을 통한 필자의 진리관과 이 진리관 속에서 [바가바드기타]의 의미였다.
진리는 불멸하는 것이고, 두루 편재해 있는 것이다. 또한,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체험한 자 역시, 그것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줄 수 없고, 그들의 표현 또한 이를 받아들이는 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에 진리를 보되, 진리를 대변하는 것을 보지 말자는 것이 나의 진리에 대한 생각이다.
이에 [바가바드기타]를 접함에, 쓰여질 당시의 시간적 배경, 힌두라는 공간적 배경이 아닌, 오늘 우리의 컨텍스트로 해석하고, 이의 외부적 컨텍스트를 분리해, 그 안에 담긴 진리를 향한 구절들로 읽는 것이다.
그렇기에‘bhakti\' 역시 <진리에 대한 자비>로 보고 있으며‘jñāna’는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로, ‘karma’는 <진리를 향해 갈 수 있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형성하는 길> 로 여기고 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정립된 상태는 아니지만 출발점의 세 가지 길로, 종국에는 상호유기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특히 대상은 있고 나는 없는 ‘bhakti’와 나는 있고 대상은 없는‘jñāna’에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이기에 ‘karma’가 필요하고 [바가바드기타] 역시 이를 제시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bhakti\' 와 ‘jñāna’의 길도 서로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바가바드기타]를 볼 때, 시공간을 초월하는, 다양한 대상을 포섭하는 진리의 지침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장된 해석일 수 있지만 이는 [바가바드기타]의 가르침, 특히‘bhakti’의 가르침이 대중화되길 바라는 필자의 마음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더불어 ‘bhakti’가 누구에게나 생활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길이 모색되길 바란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모든 대상을 소중한 나와 같은 존재로 볼 때, 거칠어진 우리의 모습은 순화될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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