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분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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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6,439회 작성일 13-11-12 08:45본문
도신의 염불 법문은 단순히 칭명(稱名) 염불을 통해 정심(淨心)에 이르게 하는 법문이 아니다. 佛이 바로 心이고, 그 心이 無相임을 뚜렷이 알아, 그 뜻이 자심에서 항상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항상 佛을 念한다는 것은 자심(自心)이 본래 無相이고, 평등하여 無二함을 뚜렷이 알아서(了知) 이 自心이 바로 佛임을 뚜렷이 아는 행이다. 이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양자가 염불의 행을 설하고는 있지만 동일한 행은 아니다.
당시 동산법문을 ‘無生법문’으로 칭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無生의 법문’은 바로 <능가경>의 핵심 요의이다. 오직 마음일 뿐이고, 能ㆍ所 떠난 一心이기에 무생(생한 바 없음)이다. <능가경>에 무생이 생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생이 그대로 무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뜻을 알 때 분별 떠나게 되어 진여(眞如)의 뜻이 드러나며, 그러한 뜻을 처음 알았더라도 쉽게 습기(習氣)의 힘으로 흔들리게 되는 까닭에 그 진심(眞心)을 지켜 흔들림 없도록(不移)함이 바로 동산법문의 염불선 법문이다.
반야바라밀이 무엇인가. 일체가 오직 마음일 뿐이고, 그 마음은 능(能 ; 주관)과 소(所 ; 객관, 대상)가 따로 없는 一心이며, 無生이고, 無相이며, 공적(空寂)하여 見함도 없고, 思議함도 없고, 知함도 없어, 그대로 心이 無心이며, 그래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뚜렷이 깨달아 아는 것이 곧 반야이고, 이 반야지혜로 일체에 걸림 없게 되는지라 반야바라밀이다. 이 반야지혜가 먼저 통해져 있어야 일행삼매에 이르게 된다.
당시 동산법문을 ‘無生법문’으로 칭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無生의 법문’은 바로 <능가경>의 핵심 요의이다. 오직 마음일 뿐이고, 能ㆍ所 떠난 一心이기에 무생(생한 바 없음)이다. <능가경>에 무생이 생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생이 그대로 무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뜻을 알 때 분별 떠나게 되어 진여(眞如)의 뜻이 드러나며, 그러한 뜻을 처음 알았더라도 쉽게 습기(習氣)의 힘으로 흔들리게 되는 까닭에 그 진심(眞心)을 지켜 흔들림 없도록(不移)함이 바로 동산법문의 염불선 법문이다.
반야바라밀이 무엇인가. 일체가 오직 마음일 뿐이고, 그 마음은 능(能 ; 주관)과 소(所 ; 객관, 대상)가 따로 없는 一心이며, 無生이고, 無相이며, 공적(空寂)하여 見함도 없고, 思議함도 없고, 知함도 없어, 그대로 心이 無心이며, 그래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뚜렷이 깨달아 아는 것이 곧 반야이고, 이 반야지혜로 일체에 걸림 없게 되는지라 반야바라밀이다. 이 반야지혜가 먼저 통해져 있어야 일행삼매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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