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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스님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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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6,404회 작성일 13-11-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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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을 念하라고 하니 자칫 佛이라는 생각에 전념하기 쉽다. 佛이란 생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이 곧 佛을 念하는 것이라 하였다. 왜 그러한가. 佛을 念함은 佛心을 念함이기 때문이다. 佛心은 無相이고, 念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念佛은 念心이니 心이란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念의 대상이 될 수 없는 佛心을 어떻게 念한다는 것인가. 생각할 수 없으니 마음을 어디에 두려 해도 둘 바가 없다. 말의 길이 끊어졌고(言語道斷), 마음 갈 곳 멸하였다(心行處滅). 단지 생각하지 않으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自心의 당처 당념에 이러한 義가 구현되어 있음을 了知해야 되는 것이다.
모든 법계의 두두물물이 설하면서 동시에 듣는다. 소리가 소리이면서 그것을 듣는다. 소리와 듣는 자리가 不二인 까닭이다. 또한 신증(身證)의 자리이다. 한 몸으로 깨어(覺) 있는 까닭이다. 법계가 그대로 일심이어서 일심법계(一心法界)인 까닭이다. 모든 경계상은 일심이 그렇게 된 것이지 그 경계상이 생겼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심 밖에 따로 다른 부처님을 생각하며 염불하는 것이 타불(他佛)을 염(念)함이고, 이러한 행으로는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 자심에서 분별함이 없고, 불생불멸하여 如한 심성을 뚜렷이 알아(了知) 이를 지키는 행이 바로 동산법문에서 설하는 염불선의 요체이다. 이러한 행이 他佛을 念함보다 뛰어나다 함은 그 행을 권하기 위함이고, 실은 他佛과 자심의 果體인 如한 자리는 평등하여 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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