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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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흥사 댓글 0건 조회 3,345회 작성일 20-02-18 15:26본문
증일아함경 增一阿含經 제23권 증상품 增上品 비구들아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르치는 것은 단지 괴로움과 그 괴로움의 소멸일 뿐이다.
기원전 7세기경 히말라야의 남쪽 기슭에 있는 카필라 성에 석가족 釋迦族이 살고 있었다.
성주 城主는 정반왕 淨飯王 이고 부인은 콜리야 족 선각왕 善覺王의 딸 마야 였다.
정반왕은 부인이 40여세 까지 태자를 생산하지 못한 것을 늘 걱정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야는 여섯개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 후 태기를 느꼈다.
해산할 때가 가까워 지자 마야는 고향의 풍습에 따라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으려고 콜리야 족이 살고 있는 데바다하로 향했다.
따뜻한 봄날 데바다하로 가는 도중에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無憂樹 아래서 오른쪽 옆구리 로 태자가 음력 4월 8일 탄생 하였다.
정반왕은 아들의 이름을 싯다르타 라고 지었고 성 姓은 고타마 였다.
싯다르타는 목적을 달성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야는 오른쪽 옆구리로 태자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이모 마하프라자파티의 품에서 자랐다.
싯다르타는 태자로서 사치 스럽고 화려한 궁중 생활 속에서 성장하여 17세에 콜리야 족의 야쇼다라와 결혼 했다.
그리고 아들 라훌라를 낳았는데 라훌라는 장애 라는 뜻이다.
훗날 붓다는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상 했다.
부왕은 나를 위해 여러 채의 궁전 봄 궁전과 여름 궁전과 겨울 궁전을 지었으니 나를 즐겁게 지내 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네 사람이 나를 목욕 시키고는 붉은 전단향 旃檀香을 내 몸에 바르고 비단옷을 입혔는데 위 아래와 안팎이 다 새것 들이다.
밤과 낮으로 일산을 내게 씌웠으니 밤에는 이슬에 젖지 않고 낮에는 햇볕에 그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
백성들은 겉 보리밥 콩국이나 생강을 최고의 음식으로 삼았으나 내 아버지는 가장 낮은 하인도 쌀밥과 기름진 반찬을 최고의 음식으로 삼았다.
여름 4개월 동안은 정전 正殿에 올라가 있었는데 남자는 없고 기녀 妓女만 있어 멋대로 즐기면서 내려 오지 않았다.
내가 동산이나 누각으로 갈 때는 선발된 30명의 훌륭한 기병들이 행렬을 이루어 앞뒤에서 호위하고 안내를 했으니 다른 일이야 어떠 했겠는가.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병을 여의지 못하면서 병자를 꺼리고 천하게 여기며 사랑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도 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찰하자 병들지 않았다고 해서 일어나는 교만이 산산이 부서 졌다.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늙음을 여의지 못하면서 노인을 싫어하고 천하게 여기며 사랑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도 늙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찰하자 늙지 않았다고 해서 일어나는 교만이 산산이 부서 졌다.
호화로운 궁중 생활이 계속 될수록 싯다르타에게 태어나서 병들고 늙고 죽는 것에 대한 괴로움은 커져만 갔다.
그에게 인간의 삶은 괴로움의 무자비한 순환으로 보였다.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괴로움에 답답했고 궁중이 감옥처럼 느껴 졌다.
어느 날 그는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음력 2월 8일 깊은 밤중에 말을 타고 하인과 함께 몰래 성을 빠져 나갔다.
그때 나이는 29세 였으며 동틀 무렵 숲에 다다른 싯다르타는 스스로 머리 카락을 자르고 지나가는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었다.
몸에 지닌 보석들은 하인에게 주어 카필라로 보낸 다음 다시 길을 떠났다.
싯다르타는 동남 쪽으로 걸어가 마가다 국의 왕사성 王舍城에 이르렀다.
싯다르타는 가장 먼저 그 부근에서 수행 단체를 이끌던 알라라 칼라마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그다음 그는 다른 수행 단체를 이끌던 웃다카 라마풋타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들의 가르침으로는 안온한 열반에 이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서남 쪽으로 가서 네란자라 강이 흐르는 우루벨라 마을에 이르렀는데 그곳에는 많은 수행자 들이 있었다.
싯다르타는 마을에 있는 조용한 숲 속으로 들어가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혹독한 고행만 했다.
싯다르타는 무덤가에 가서 죽은 사람의 옷을 벗겨 떨어져 나간 몸을 가렸다.
싯다르타에게 안타촌 案吒村 사람들이 와서 나뭇 가지로 귓구멍을 찌르기도 하고 콧구멍을 찌르기도 했다.
또 침을 뱉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흙을 몸에 끼얹기도 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끝내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고요한 마음을 지켰다.
또 외양간에 가서 송아지 똥이 있으면 그것을 집어 먹었고, 송아지 똥이 없으면 큰 소의 똥을 집어 먹었다.
그러자 몸은 나날이 쇠약해져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정수리에 부스럼이 생기고 피부와 살이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머리는 깨진 조롱박 같았고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깊은 물속에 별이 나타나듯 눈도 그러했다.
낡은 수레가 허물어 지듯 몸도 그렇게 허물어져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엉덩이는 낙타 다리 같았고 손으로 배를 누르면 등뼈가 닿았다.
몸이 이처럼 쇠약해진 것은 다 먹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이렇게 6년 동안 부지런히 도를 구했으나 얻지 못했다.
가시 위에 눕기도 했고 못이 박힌 판자 위에 눕기도 했으며 새처럼 공중에 몸을 거꾸로 매달기도 했다.
뜨거운 태양에 몸을 태우기도 했고 몹시 추운 날에 얼음에 앉거나 물속에 들어 가기도 했다.
알몸으로 지내기도 했고 다 해진 옷이나 풀로 만든 옷을 입기도 했으며 남의 머리 카락으로 몸을 가리기도 했다.
머리 카락을 길러 몸을 가리기도 했고 남의 머리 카락을 머리에 얹기도 했다.
그때 싯다르타는 다시 생각을 했다.
이렇게 쇠약한 몸으로 최상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약간의 음식을 먹어 기력을 회복한 후에 도를 닦아야 겠다.
그러고는 음식을 먹자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는 나를 버리고 가면서 말했다.
사문 沙門 구담 瞿曇 고타마은 정신 착란을 일으켜 진실한 법을 버리고 그릇된 행으로 나아가는구나.
싯다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네란자라 강에 가서 몸을 씻었다.
그러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보리수 菩提樹 아래에 가서 풀을 깔고 편안히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겼다.
명상을 시작한 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적막한 새벽녘에 별이 반짝 였다.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는 가슴 깊이 잔잔하게 사무치는 기쁨을 느꼈다.
음력 12월 8일 모든 이치가 환하게 드러나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그때 세존께서 우루벨라 마을 네란자라 강변의 보리수 아래서 비로소 깨달음을 얻으시고 가부좌 하신 채 7일 동안 삼매에 잠겨 해탈의 법열을 누리고 계셨다.
이제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이룬 자 즉 35세 해 12월 8일 드디어 붓다가 되었다.
그 후 붓다는 여러 나무 아래로 옮겨 다니면서 해탈의 법열을 누렸다.
붓다에게 여러 가지 호칭이 있는데 석가족의 성자 聖者 석가족의 침묵 하는자 라는 뜻의 석가모니 釋迦牟尼 세상에서 가장 존귀 하므로 세존 世尊 진리에서 왔으므로 여래 如來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하므로 응공 應供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었으므로 등정각 等正覺 이라 한다.
괴로움에서 열반으로 가는 4제 고 집 멸 도 12연기 괴로움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열두 과정 5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의 무더기 3독 열반에 장애가 되는 세 가지 번뇌 무상 고 무아 열반으로 가는 세 관문 3학 열반으로 가는 세 가지 수행 계 정 혜 4정단 열반에 이르기 위한 네 가지 바른 노력 5근 열반에 이르게 하는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 4염처 몸 느낌 마음 현상에 대한 알아 차리기의 확립 일곱 가지 깨달음의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는 명상 수행 열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소멸 등이다.
4무량심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 자 비 희 사 계율 악을 방지하고 선을 쌓기 위한 규율
반열반 호흡을 거두고 정적 靜寂 속으로 돌아 감이다
인생의 삶에는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와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삶이 고달프고 가난한 사람뿐만 아니라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 이다.
그럴 때 마음 공부를 이유로 절을 찾고 스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마음의 소음에 부대끼는 이들을 불교의 숲속으로 데려가 나무 하나 하나를 쉽게 설명하고 그 숲속에 편히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줄 수행의 세계로 친절하게 인도할 것이다.
출가 出家는 가정 생활로 부터 떠나 걸식 수행자 修行者로서 행하는 것 또는 불교 교단의 수행자 修行者가 되기 위한 입문 의식이다.
재가 在家와 대칭되며 세속의 먼지를 떠난다고 하여 출진 出塵 이라고도 한다.
출가 出家의 전통은 아리아 인들이 도래하여 베다 문헌을 형성하기 이전의 고대 인도에서 부터 존재 했으며 BC 6세기경 부터 아리아 인들이 본격 적으로 받아들여 오늘날 까지 매우 고귀한 삶의 양식으로 존중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출가 出家를 비롯하여 출가 出家의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존중되어 왔다.
불교의 칠중 七衆 곧 7종의 구성원 가운데에서 우바새 우바이는 재가자에 속하며 비구 비구니 식차마나 式叉摩那 사미 사미니 등은 출가자 出家者에 속한다.
남자 출가자 出家者는 사미로 시작하여 비구에 이르고 여자 출가자 出家者는 사미니로 시작하여 식차마나를 거쳐 비구니에 이른다.
사미 또는 사미니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의식을 거쳐야 하는데 그 의식 자체도 출가 出家라고 불린다.
이러한 출가 出家 의식은 지역마다 세부 사항에 있어서 다소 다르지만 일반적인 절차는 대개 다음과 같다.
우선 사미에게는 출가 出家 생활을 지도해줄 스승 곧 아사리 阿闍梨가 필요하다.
아사리는 자신이 소속한 승가에 사미가 되려는 사람이 있음을 알리고 그의 출가 出家를 허락해줄 것을 요청한다.
요청은 대개 수락되며 그뒤에 아사리는 사미가 될 사람의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의 架裟衣 입게 한다.
그런 뒤 아사리 또는 다른 덕이 높은 비구가 계사 戒師로 선정 되었을 때 사미가 될 사람은 그 앞에 나아가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 하겠다고 하는 내용의 삼귀의 三歸依를 창 唱하고 출가 出家를 허락해줄 것을 청한다.
그러면 계사는 사미로서 지켜야 할 십계 十戒를 일일이 말하며 반드시 지킬 것을 다짐 받는다.
출가 出家 의식은 사미가 된 사람이 자신의 옛 허물을 용서해줄 것을 청하고 스승의 지도에 충실히 따르겠다고 다짐 하면서 종결 된다.
사미는 여러 날 또는 여러 달에 걸쳐 지도를 받으며 비구들이 탁발나갈 때 따라 다니기도 하지만 보름마다 모여 승가의 계율 곧 바라제목차 波羅提木叉를 암송하는 포살 布薩 이라고 하는 집회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미얀마를 비롯한 몇몇 상좌부 불교 국가에서는 불교를 믿는 사춘기 소년은 누구나 출가 出家 의식을 거쳐 일정 기간 출가 出家 생활을 하도록 하고 있다.
티베트와 중국에서는 출가 出家 하기에 앞서 일정 기간 준비 학습을 할 것이 요구 되는데 그 기간에는 삭발을 하지 않으며 병역을 면제 받지도 못한다.
번뇌에 얽매인 속세의 생활을 버리고 수행자 修行者 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출가 出家라 한다.
출가 出家는 불교 고유의 습속은 아니고 인도의 많은 종교들이 채택하고 있는 종교 생활을 불교에서 채택한 것이다.
브라흐만교에서는 4기생활 四期生活이라 하며 수행자 修行者는 일생을 가거기 家居期 출가기 出家期 범행기 梵行期 유행기 遊行期등 4기로 나누어 생활하는 것을 이상 理想으로 삼았다.
가거기는 부모와 스승의 지도를 받으면서 집에서 공부하는 때이며 이때에는 결혼도 허용된다.
출가 出家기는 집을 떠나는 시기이고 범행기는 수도 생활에 전념하는 시기이다.
유행기는 다시 마을로 내려와 수도 생활을 통해 터득한 바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기간이다.
부처님의 출가 出家나 제자들의 출가 出家는 이 같은 인도 종교들의 전통적 풍습에 따른 것으로서 이후 불교 수행자 들의 중요한 종교적 생활 양식으로 정착 되었다.
출가 出家는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집을 떠나는 것은 가출 家出일 뿐 종교 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종교 적으로 의미를 갖는 출가 出家는 세속적 생활방법 이를테면 명리 名利나 권세 權勢 욕망 欲望과 번뇌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날 때 출가 出家는 이루어 진다.
출가 出家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육친출가 肉親出家로 가족과의 생활에서 결별하는 것이다.
둘째는 오온출가 五蘊出家 인데 이는 일체의 육체적 욕망으로 부터 떠남을 의미한다.
셋째는 법계출가 法界出家로 번뇌와 업보 무명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참다운 출가 出家는 머리를 깎고 입산하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가자 出家者가 어떤 마음 가짐과 행동으로 생활 하느냐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겉으로 아무리 삭발 염의하고 수행자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속으로 세속적 번뇌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출가자라 이름할 수 없다.
출가 出家 수행자 修行者가 출가 出家하는 뜻은 세속적 명리와 권세를 쫓기 위함이 아니다.
할애단정 割愛斷情 즉 애틋한 사랑과 인정을 끊고 오직 출가 出家 본의인 상구보리 上求菩提와 하화중생 下化衆生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구도와 교화로 청정한 출가 出家 수행자 修行者의 삶은 시종일관 역사에서 걸어온 출가 出家 수행자 修行者는 한결같이 신성한 행위와 고결한 인품으로 미화 되었다.
이를 위해 출가자 出家者는 거듭거듭 출가 出家를 해야 한다.
출가 出家 수행자 修行者도 인간이기에 때로는 부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식을 때도 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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