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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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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6,497회 작성일 13-10-0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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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축의시대
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고 규정지었다. 인간의식의 확대로 고대종교로 부터의 해방이다. 중국에서는 유고와도교가 인도는 붓다와 자이나교가 페르시아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이스라엘에서는 성경이 쓰여졌다. 공동적인 것은 자아의식이다. 개인적인 개방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축의 시대는 중요한 시간의 띠 이다. 예수와 그리스도의 발흥, 모하마드와 이슬람의 발흥 그리고 초기불교로부터 마하야나의 흥기가 있다. 힌두교의 베단탄와 박티는 축의 시대동안에 시작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일신교가 짧은 시간동안 있었다.
4.구원론의 축의 이동
종교현상의 관점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던 것을 구조론적으로 받아 들인다.벨라는 자아를 침범하는 자에 대한 자아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응답이다.고대의 종교는 삶의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안정적인 기초위에서 그것을 계속 추구했던 반면, 축의 시대는 그것을 격상 시켰다. 유대인들은 태생적인 죄로 고통 받는다. 유대교는 왕국의 도래를 그리스도인들은 타락한 실존이다. 무스림들은 심판과 극락을 그리스도교는 구원과 영원한 삶, 불교는 깨달음과 열반, 힌두교는 목샤 을 말한다.
3.인간변형으로서의 구원 혹은 해방
1.힌두교의 전통에 대한 구원과 해방
힌두이즘이란 서양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이는 베다경전을 공통으로한다.궁극적인 합일은 자아의 초월이다. 진정한 본성상 브라만이 영원한 실재이다. 해탈은 영원한 지양이다.라다크리쉬나는 신적의지는 우리의 의식과 의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힌두교 전통의 종교적 해방에 이르는 세 가지는 첫째는 통찰의 길 지식의 길이다. 보편적인 자아를 말한다. 분리된 자아로서 현재하는 것은 환영이다. 루돌프오토는 모든 것은 진정한 자아에는 속하지 않고 ego에만 속한다. 라고 했다. 두 번째 길은 행위의 길이다. 이것은 행위의 결과를 바라지 않는 행위이다. 칸트는 인생의 의무를 그 의무를 위해서만 할 것이며 자아가 관련된 관심 없이 행위하여야 한다고 한다. 세 번째의 길은 박티 혹은 궁극적인 실재의 길이다.박티는 신에 대한 헌신을 말한다. 타적으로 자아에 도달하는 것이다.13세기 샤이바이트(시바신을 믿는 힌두교)시인인 Arulnanti는 에고이즘 혹은 자아중심성은 나와 나의 것에 관한 정신이다. 박티 요가는 불이일원론자에게 있어 무언가 들러붙어야할 인격적인 현존의 낮은 깨달음이다.
2.불교전통의 해방의 길
불교도들의 구원은 에고를 죽임으로써 실재를 깨달은 것과 다르지 않다. 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구원론적인 인간의 변형은 나와 자아라는 강력한 환영으로부터 다.불교의 삶의 현실은 모든 고통이다. 에드워드 콘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기울어진 정신에 자아가 진리를 새겨 놓는 유효한 방법이다. 스티븐 콜린즈는 이기심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한 소승불교의 방법은 자부심, 자만심을 없애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동일한 기초적인 해방의 개념이 작동한다. 궁극적인 시재에 개방성을 표현한 깨달음이다.
3.그리스도교의 전통에 의한 해방의 길
그리스도교의 개념화작업은 속죄이다. 구원을 구원 그 자체로 제시 되지는 않는다. 의화, 성화사이의 구분은 도덕적 영적인 상태의 변화의 결과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자신의 가르침에 법적인 개념은 없다. 예수의 가르침은 에고의 지배로부터 하느님의 중심적인 삶으로서의 철저한 전이이다.dark night라는 용어는 기존의 의식의 중심을 포기함으로써 새로운 의식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것은 새로운 인간이다.
4.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전통에 의한 구원과 해방
예언자의 목소리는 아모스서에 등장한다. 장의와 평화가 구현되는 하느님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하느님의 용서와 갱신의 시대를 보았다.Gershom Scholem은 이와 같이 유대교의 묵시문학이 그리스도교의 도래와 함께 끝나게 되었다는 고전적인 생각이 잘못 되었는 것을 보여준다. 이슬람교는 구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창조주에 항복하지 않으므로써 선명하게 구별한다. 자기중심성으로부터 궁극적인 실재 중심으로 인간실존의 변형이다. 쿠란은 자비롭고 스스로 무화되어 지워진다. 이슬람은 종교와 세속의 구분이 없다. 여기서는 교회와 국가를 구별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신적인 생명이 인간적으로 살아갈 때 자기중심에서 궁극적인 중심으로 변형되는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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