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학자들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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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6,412회 작성일 15-10-29 18:27본문
신유학자들의 행복은 나물먹고 물마시고 이쑤시고 이다.
이것은 안회의 행복론이다. 공자는 산수좋은되서 음악들으며
노는 것이다. 다시 보면 이 행복은 두 가지의 만족이 있어야 한다.
첫째 가족이 없어야 하고 다음이 굶어 죽거나 자존심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이 분들의 특징이 굉장히 정치적이다. 나중에 나타난 신유학자들은
사림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자급자족의 소농장경제를 확보하였고
시봉할 종은 있었다. 다시 해석하면 군자의 최고는 벼슬을 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이 근본이 되는 것인데 위의 말이 가능 할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의 이 이론은 어떻게 보면 정치적 소외자와 정치적인 무관심자의 이야기이다.
불교는 가장 현실 대응적인 종교이다. 현실이 다르면 바로 잡을 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지금의 대승이다. 카돌릭은 은자와 선자가 있다. 예수의 조용한 삶을 역동적인 현실로 만들어서 결국은 수 많은 희생자를 만든 마녀사냥과 히틀러의 인종 청소에 동조한 것이다.
그들의 행복과 정의는 무엇일까 이슬람도 똑 같다. 행복은 나에서 있지 왜 밖의 신에게서 구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행복과 체면의 혼동인가.
이것은 안회의 행복론이다. 공자는 산수좋은되서 음악들으며
노는 것이다. 다시 보면 이 행복은 두 가지의 만족이 있어야 한다.
첫째 가족이 없어야 하고 다음이 굶어 죽거나 자존심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이 분들의 특징이 굉장히 정치적이다. 나중에 나타난 신유학자들은
사림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자급자족의 소농장경제를 확보하였고
시봉할 종은 있었다. 다시 해석하면 군자의 최고는 벼슬을 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이 근본이 되는 것인데 위의 말이 가능 할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의 이 이론은 어떻게 보면 정치적 소외자와 정치적인 무관심자의 이야기이다.
불교는 가장 현실 대응적인 종교이다. 현실이 다르면 바로 잡을 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지금의 대승이다. 카돌릭은 은자와 선자가 있다. 예수의 조용한 삶을 역동적인 현실로 만들어서 결국은 수 많은 희생자를 만든 마녀사냥과 히틀러의 인종 청소에 동조한 것이다.
그들의 행복과 정의는 무엇일까 이슬람도 똑 같다. 행복은 나에서 있지 왜 밖의 신에게서 구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행복과 체면의 혼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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