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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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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5,774회 작성일 14-09-2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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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그는 누구인가?
공자는 중국에서 孔夫子라 한다. 그의 이름은 구이며, 자는 중니이다. 그는 기원전 551년 노나라 창평 현 곡부에서 출생 했다.공자의 집안은 정치적으로 무당에서 쫒겨나서 노나라로 이주했다.(원래 송나라 사람)
공자는 어려서 가난했으나, 노나라의 관직에 투신하여(처가집 덕에 세무공무원으로 시작했다.) 높은 관직까지 올랐다. 그후 정치적인 모략으로 하차하고 13년간 정치적, 사회적인 개혁의 이상실현을 위해 떠돌았으나 결국 노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냈다.그리고 3년후인 472년 세상을 떠났다.

공자의 육경

앞에서 말한 제자학파들이 개인적인 교육의 실시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현대의 안목으로 보아 공자는 중국사상의 사학을 처음으로 일으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첫사람이다.
공자는 중국최초의 사숙의 스승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논어에 상세히 기술 되어 있다.
인의 도덕의 이야기는 육경에 잘 나타난다. 역.시.서.예.악.춘추를 뜻한다. 그중에서 악은 단독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춘추는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후 479년까지의 편년체의 노나라 역사서이다. 역은 원래 복서이다. 그러나 유학자들은 형이상학적으로 보았다. 공자의 육경에 관하여서는 전통적으로 두학파의 견해가 있다.
하나는 육경전체가 공자의 저술이라는 견해와 다른 학파는 공자가 춘추를 짓고, 역경을 서술했으며 예악을 개혁하고 동시에 불필요한 부분을 첨가했다는 이야기 이다.
공자는 사실 주석가 아니였기에 전통적인 관례나 기준에 일탈한 것을 바로 잡았다. 그러한 사적인 자격에서 저술은 공자 이전에는 전례가 없다. 공자는 중국최초의 개인적인 교사였으나 저술가는 아니다.육경은 공자이전 부터 전해 내려온 저술이며 이 육경은 주대 초기 봉건시대의 봉건제도에 귀족을 가르치기 위한 기본교재였다. 예에 밝았기 때문에 장례, 제례, 혼례등 기타 의식 있을때 숙련된 역활을 한다. 이를 儒라 한다.

교유가로서의 공자
공자는 전통상의 유 라고남 볼 수 없다. 일면 논어에 나타난 공자는 단순한 교육자이며, 자기의 문화유산을 제자들에게 해설 해 준다.자기의 도덕관으로 해설해 준다.
공자는 자식의 나서3년을 지나야 부모의 곁을 떠날수 있기 때문에 3년상이라 이런 보은에서 비록됐고 온 세상의 공통적인 관례이다. 공자는 시경의 가치를 도덕적인 완성에 두고 있다. 시경은 시대의 울분자나 소외 계층의 이야기나 폐배자의 이야기가 은유적인 시로 전하기 때문에 이를 외우고 생각하면 이상적인 도덕의 완성을 본다. 공자는 이런방식으로 13경전체에 주석을 달았다.
정명론
공자는 경전을 새로이 해석하면서 개인과 사회, 자연과 인간 그리고 자기의 독자적인 사상을 추가 했다. 사회에 대하여 공자는 질서있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正名이라고 했다. 우리가 실제로 사물에 붙치는 이름인 명과 그내실은 일치 해야한다.
그래서 공자는 이름에 맞은 사람 곧 군자는 군자의 도, 백성은 백성의 도를 말한다.
이를 곧 왕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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