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

자연과 더불어 삶의 지혜를 스스로 갖게 하는 곳 백련산 신흥사

기초교리

지명

페이지 정보

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5,862회 작성일 14-10-11 12:54

본문

知命
공자에게서 의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행위이다. 도덕적인 충동외에는 어느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자로는 군자가 벼슬을 하는 것은 의를 행하는 것이라 한다.
도가는 무위를 주장하는데 반해 유가는 無以爲 즉 보상을 바라지 않는 행위를 주장한다. 유가에 의하면 인간이란 아무것도 하지 낳을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주어져기 때문이다.인간은 자기가 한 일에 어떤 대가도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공자는 도가 온 천하에 실행된다면 그것은 命이요, 도가 폐지 된다면 그것 또한 명이다. 여기서 공자의 명은 천명을 의미한다.
최선의 일은 성공과 실폐에 상관없이 자기가 해야 하니까. 지명이다.
정신적 발전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 성인의 최후의 경지 논어 위정편
이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아폴로 신에게 신탁을 받아서 그리스인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듯이 공자도 하늘의 도를 인간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공자의 지위
공자의 지위는 세계에서 널리 유명하지만 중국에서는 항상 지위가 시대에 따라 상달한 변화를 만들었다. 그의 생의 불행함은 그사 죽고 나서 스승중의 스승으로 추앙 받았다. 공자의 춘추는 한나라 사람이 실현 할 정치 이념을 수록했다. 19세기에 쑨원의 중화민국의 탄생에는 이런 공자의 사상이 바탕이 되어 천명으로 한족이 다시 천하를 지배한다는 사상이 내포 되오 있다.
묵자
묵자는 평등을 강조하고 불평등을 배격했다. 성은 묵이요 이름은 적이다. 그는 정확한 출생기록은 없지만 대체로 기원전 479-381로 본다. 공자 이후 첫번째 사상가이다. 묵적은 묵가 학파의 창시자이다. 공자는 고대문명을 합리화 하고 묵자는 비평가이다. 공자는 세련된 군자이면 묵자는 군사적 설교자이다., 공자는 초기 주나라의 전통적인 제도를 합리화하고 예, 와 악를 동경했다. 하지만 묵자는 그것의 효용성과 타당성에 회의를 품고 더 정진했다.
묵가의 사회적 배경
주대의 왕, 제후, 대부들은 각각 자기의 군사적인 전문가를 두고 있으며 이들이 정치에 주심가이다. 하지만 주가 망하고 그들은 생존을 찾아 흩어지고 춘추시대가 더욱 전쟁의 양상을 띤 배경이다.
묵가의 제자들은 대부분 무사 군사 출신들이 많았고 묵가의 사상도 이런 것이 많았다.묵가 조직의 지도자를 거자라 한다. 그 집단에 대한 살생권도 가지고 있다. 묵적은 이 집단의 초대 거자이다.
묵자의 제자들은 두가지를 확실히 했다.
첫째 기존의 군사들이 돈을 받고 적을 공격했지만 묵자의 제자들은 방어만 했다.둘째로 기존은 자기의 합리화 윤리를 가지고 있지만 묵자는 직업윤리를 잘 다듬어 합리적 철학 의미를 부여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종무소 전화번호 : 02-395-1222

계좌안내 : 하나은행 753-810169-89707 [예금주 신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