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

자연과 더불어 삶의 지혜를 스스로 갖게 하는 곳 백련산 신흥사

기초교리

중국의 종교의 관점

페이지 정보

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6,650회 작성일 13-07-29 08:50

본문

역사적 관점에서 본 중국 종교의 정치적 역할
정치적 의미에서 국가는 가장 큰 사회적 단위로서, 무수히 많은 지역공동체가 통합되면서 통일된 국가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에 있어서 종교의 정치적인 역할은 국가의 기능과 구조에 있어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유가의 정교론에 의해 모호했졌다. 이는 유가이념의 자체가 비종교적이며 세속적 성분이 매우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중국의 종교와 국가의 단계는 세가지 유형이다. 1.국가와 종교의 혼연일체 2. 종교의 운둔 생활 3. 직접적인 정치 활동 예로 태평천국의 난이 해당한다.
중국역사상 대부분의 시기에 있어서 종교는 지속적으로 정부를 지지해 왔다. 통치세력에게 조차 초자연적인 신성성을 부여하고 윤리적인 통치에 기여한다. 특히 반란이나 왕조 교체기에는 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중국종교의 발전단계 1.기원전2000-부터 전한 제국 까지 정부조직과 정치활동역할 담당2.1-11세기 도교의 흥기와 불교의 유입시기이다.전통종교와 정부에 맞선 주도권 경쟁 3.11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이다. 종교에 대한 정부의 안정화 (실제적인 종교의 제압)
초기 중국의 정치생활에서의 전통종교
중국역사의 여명기 초기여사의 문헌인 國語의 기록에 의하면, 상대이전까지는 종교가 곧 정치적인 기능의 일부이다. 기원적2000년 경에는 주술이 흥성했다. 전통종교는 조상 숭배 그리고 천신과 천신의 부속신에 대한 자연신 숭배, 점복과 제사 등 4가지 포함 마르셀 그라네 는 국가종교가 일반 농민들의 종교와 구별된다고 주장했다.제후의 조상묘인 종묘는 사직과 더불어 봉건국가의 집단적인 차별화 되었다. 크릴은 이것을 초자연적 현상과 연결했다. 점복은 후대에 들어 점차 개인적인 종교활동으로 변했지만, 고대에는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점복을 조종하는 것은 정치적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유교가 합리적이지만 그안에는 정치와 종교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주역을 통한 점복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묵가는 유가가 종교의례적 부분만 강조하고 정신적 수양을 빼것을 비판했다. 유가는 천명설 지지하고 묵자는 대중의 지지인 천의를 지지한다.
춘추전국시대(기원전 8세기-기원전3세기) 하늘의 공정성과 천의에 대한 신념으로 동요한다.
漢 대에는 종교적인 전통이 부각 되었다. 특히 음양오행설이 유행했다. 체겨적인 신학이론 제공 E한 유학파의 동중서는 天人相應의 이론이 천의 인격적인 특징과 천이 인류의 공적인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이다. 정치권력의 계승에 관한 이론이 5가지 자연의 구성요소에 상응하는 오덕이다. 음양신학의 정치생활의 영역까지 확대한다. 한 제국은 전통적인 신학적으로 지방종교을 흡수한다. 지고무상은 도교의 신학이론이다.
부르크하르트는 종교적는 ‘인류의 가장 본질적인 관계’라고 주장한다. 종교는 국가와 같은 많은 사회적인 집단들을 함께 묶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공동체 종교 대 자원종교
한 대 이후의 종교는 자유의지에 의한 自願宗敎가 흥기한다. 개개인들은 국가, 지역사회 그리고 사회단체의 일원참여한다. 그 이전에는 강제에 의한 종교의례의 참석이다. 도교와 불교의 흥기로 자원종교가 나타났다.자원종교는 이탈적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1.정권정복의 속성2, 정치세력으로 발전한다. 모든 상황은 도교와불교의 흥기속에서 발전 했다.
도교의 흥기
2세기의 도교의 흥기는 자원 종교의 탄생을 말한다. 전한말에는 도교세력의 봉기인 태평도의 난과 189년의 오두미파의 난이 일어난다. 결국 조조가 제압했다.도교의 이상적인 방법은 혈육사이의 정을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다.
불교의 흥기
불교는 세속적인 것은 멀리하면서 정치적이 였다. 한말에는 정치에 관여 했다.한제국 멸망후 독립성을 확보했다.420-589년 사이에 자연재해와 사회적 불안으로 마침내 불교가 민중 속으로 파고 들었다. 중국 초기는 황제와 부처와 노자가 같이 받들어 졌다.
불교의 발전 초기에는 주술적인 의례로 전파 되었다. 주술은 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민중운동으로서의 불교
중국에 있어서 초기 불교의 발전은 주로 소승불교적 특징을 갖고 있어서 개인적 해탈을 강조했다. 유교사상과 일치하는 도덕적 관점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4세기말 5세기초에 법현 스님과 구마라집에 의해 역경이 되면서 불교가 흥했다. 불교가 흥성하면서 통치자들도 여기에 포함 됐다.양제.수문제 , 당왕조 까지 해당 된다.
정치적 지배에 대한 승려집단의 도전
3세기 중반기 까지 인도 승려가 서원의 계율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제도종교로서 불교운동의 필요한 부분을 충족 시겼다. 4, 5세기에 이르러서는 종교적인 역량을 통해 사원제도를 조직해 냈다. 6세기 가지 ‘국가속의 국가’가 이미 일정한 수준까지 발전했다.
불교의 조직적인 역량으로 477-534년까지 채 60년동안 불교의 무장 반란이 일어났다. 법란(法亂) - 정치 결탁을 거부하였을 때 - 삼무일종 법란 - 삼무일종 법란 - 불교탄압 - 초세속적인 승가와 세속간의 문제북위 무제(재위 423~451. 법란은 446~452, 6년간) 북주 무제(재위 560~578. 법란은 574~579, 5년간) 당의 무종(재위 841~846) 후주 세종(재위 954~958) 이다.
절충적 형태의 전통종교에 대한 재평가
5호16국 시대의 전진의 황제들은 자기들이 외국인 였기에 외국인의 종교인 불교를 숭상했다. 송대를 제외하고는 민족주의가 종교에 영향을 밑쳤다. 송대에 유학이 유행한것은 정치질서에 필요성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다. 유교사상은 전통적인 신령들에 의해 지지되는 사회정치적인 계층제도의 영향을 받아들여서, 천상의 질서를 인간세계로 가져오게 된다.
신유학은 심과 물에서 이론의 정립에 많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제10장 유학이 이론과 실제 속의 종교적 측면
유학은 중국문화에서 언제나 결정적인 요소였다. 중국사회는 본질적으로 유학의 기반 위에서 구조화되어 있으며 모든 실천에 대한 가치 판단 기준또한 유학에서 부여 받는다.
유학의 종교성은 사회 교화의 원리로써 시간동안 일관된 모습으로 이성적교화의 실체인 동시에 감상적 면모로서 유학은 일종의 신앙이다.[국가 종교로서의 유학의 기원과 발전] 이라는 저서에서 존 셜록은 성숙한 제도로서 유학사상에 담겨 있는 종교성을 언급했다. 불교는 유학에 심, 물의 영향을 주었다.
유학의 불가사지론의 본질
유학의 교리 가운데 이성주의관을 강조하면 정통유학의 이성사회로 발전 할 수 있다.
학자로서는 장태염, 양계초, 진독수, 호적이 있다.
이들은 유학의 세계를 천명과 연결하여 ‘매우 의미 있고 윤리에 의해 편재된 하나의 우주’로 보고 있다.논어 속의 많은 언술이 유학의 불가지론적 본질을 입증하고, 초자연성과 유사성을 끊는데 이용되어 왔다. 유가의 이성주의를 옹호하는 호적은 무신론자인 범진과 사마광을 내세웠다.
천명의 믿음
유가 사상은 하늘에 대한 신봉, 천명결정론, 예언 및 음양오행설에 기반을 둔 종교 사상의 하위체계를 포함한다. 인간세상과 유사한 지배세력이라는 천의 신앙과 함께 시작한다.
공자의 천은 지고무상의 인격화된 힘으로 자연계와 인간의 만사를 관장하고 상벌을 집행하는 절대권력으로 비쳐졌다는 해석이다. 전대흔은 ‘고인이 말한 하늘의 도리란 길흉화복을 말한다, 한나라 왕충은 천의 초자연주의의 운명론을 이야기 한다.맹자는 하늘의 인격화를 분명하게 말한다. 유가사상의 중요한 전재는 인간의 사회질서를 조정하여 인간 슷로가 속해 적응해야만 화합에 이르고 행복을 얻을수 있다.
천명을 회피하고 이기는 것이 지명이다.
음양과 오행설(금목수화토)이 있다. 역경이 중심이다.실제로 유학에는 영향이 거의 없다. 오행은 천인 합일의 결과이다,
제사와 조상숭배
제사와 조상 숭배는 초기 중국의 양대 산맥이다. 제사는 초자연적인 보호와 축복을 기원하여 혼령에게 행하던 의식이다.제사의 규범적인 행위가 禮이다.순자이후의 제사는 귀신의 일이다. 이것들이 발전하여 친족의 체계가 유가사회의 회심이다.
유가사상의 종교적기능
영혼에 대한 무신론적이거나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 유가사상이다.약간의 운명적인 특색이 있었서 전통사회의 내부에서 사회도덕적인 가치를 펼칠수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종무소 전화번호 : 02-395-1222

계좌안내 : 하나은행 753-810169-89707 [예금주 신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