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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경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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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6,385회 작성일 13-05-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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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장 능가경의 大公性

1.머리말
2.본말
3.결말
1.머리말
능가경은 스리랑카의 경전이라는 말로 랑카의 음역이고, 방등경계열의 경전이다. 이는 보리달마가 중국에서 전화며 조동선의 근본경전이 되었다가, 육조혜능부터는 금강경이 유행했다. 스즈키는 이를 중히 여겼다.
능가경은 이념상으로 법화경을 따르지만 철학적인 면은 금강경을 따른다. 여기서 곧 제목인 대공성을 의미한다. 능가경은 금강경의 “법도 오히려 버리거늘 하물며 비법은 이리요.”라는 구절을 인용한 부분에서 계념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능가경은 5법(名, 根, 分別, 智, 如如), 8식(안, 이, 비, 설, 신, 의, 말라, 아뢰야), 삼성(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 이무아(인무아, 법무아)로 구성되며 여기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이 부분들은 설일체유부와 독자부 그리고 유식론자들이 이론으로 발전 했다.

2.본말
능가경의 2장의 출발은 108가지질문으로 언급 되지만 이를 122이상의 주제와 관련 된 것이다. 무착(유가행자)에 의해서 이것이 좀 더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첫 번째가 ‘일어남(生)에 대한 것이다
utpādapadam anutpādapadaṃ,
1).일어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일어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2).일어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일어나지 않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1.2는 생겨나는 것에 대한 거부와 동시에 2번에서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 선의 해오의 탁월한 능력이다.
위의설정은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a=b=c는 a=c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a=c의 성립을 말한다. 이는 부정에서 바로 긍정을 표출하므로 써 북방선의 길을 열었다,
능가경에서도 법화경과 마찬 가지로 세간, 출세간, 출세간상상으로 나타내며 출세간상상이 있고 ‘영상없음’과 ‘여래의 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능가경의 핵심이다. 無影像의 부정주의에서 如來地의 긍정능동주의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定(비인지적 상태)에서 무분별삼매(인지적 상태의 삼매)로 전환
a.능가경의 심리학
자심-무상-무유상-무분별삼매(여래지)이다. 3번째 까지는 네 번째를 가기위한 단계이다. 이는 자기망념에서 무상을 관하고 다시 무상에서 유상을 보며 그리고 자기스스로의 지혜의 깨달음을 아는 것이다. 여기는 돈수와 점수의 같이 존재하므로 관념론적 심리학에서 인식론으로 가는 토대가 되었다. 만약에 무유상에서 끝났다면 관념론에서 끝나지만 여래지에 가면은 인식론으로 전환한다.
능가경에서 6식은 밖의 대상을 관념론적으로 바로 보는 도구이고 이를 이야기 하기위하여 根을 연결 시켰다. 근은 識과 같이 작용하여 분별상을 만들고 곧 망상을 만드는 것이다 . 찰나식의 움직임으로 연결되며 마음 직 의근도 분별상 곧 실체하는 것으로 보고 소멸의 대상이며 오직 팔식인 아뢰야식에서 습기를 없애므로(관찰법) 대공성 여래장으로 간다고 한다.
3.결말
능가경의 법화경과 닮은꼴은 대공성을 지나면 여래장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존재의 비실재성을 인정하지만 중생의 여래장은 존재 한다는 것이다.

제19장 바수반두(세친)와 유식론

1.머리말
2.본말
3.결말

1.머리말
세친은 부파와 부파를 넘어서 불교전통을 탐구하고 저술했다. 설일체유부와 경량부를 공부하였고 이를 대승불교의 연구에 많이 활용 했다.
반야경을 공부하고 중론을 서술한 나가르주나 사후에 두 세기가 흘러, 불교 저술 활동의 또 하나의 황금기가 도래하자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가 출현하여 붓다의 본래 가르침을 논증하는 저술을 남겼다,
아비다르마의 주석서들을 연구하는 돼서 출발하여 설일체유부 논사들과 경량부 논사들의 입장을 비교하여 평가할 수 있었던 그는 설일체유부가 붓다의 인도철학의 성과를 설명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설일체유부의 유명한 대표자인 상가바드라 입장을 달리 했다.
스테판 아나커가 최근 출간한 ‘불교의 심리 의사 바수반두의 일곱 가지 저서’ 들은 특히 그의 일곱 가지 주제들이 이해에 도움을 준다.
나가르주나와 바수반두사이의 관계에 관한 일은 이들 둘 사이의 불일치는 그들 두 스승을 따르던 6세기경의 후계자들 간의 불일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아나커의 시각은 올바르다. 하지만 아나커는 나가르주나가 ‘인과성 전체의 부정’에 빠져 있다고 보는 관점은 옳지 않다. 또한 반수반두가 그의 이복형 아상가(Asanga, 無着)로 인해 유가행자(Yogacara)로 전향하게 되었으리라는 추정이다. 하지만 세친이 무착에 의해서 절대적 관념론자로 보는 것도 세친의 창조성을 침해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아마도 6~7세기경의 바수반두 제자들의 오해로 말미암아, 철학적으로 가장 세련된 그의 저서인 유식론(Vijnaptimatratasiddhi)이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복잡하게 뒤엉키게 되었을 것이다. 산스크리트본이나, 한역본, 티벳본등은 나중에 절대적 관념론자를 만드는 일등공신인 스티라마티(sthiramati)나 다르마팔라(Dharmapala)와 같은 주석자들에 의해 원본이 손상된 이후에야 완성된 것들이다. 실제로 세친은 정확히 붓다의 설법을 읽어 관념론자의 생각을 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붓다는 사유(citta)와 정신(mano)과 의식(vinnana)이라는 용어들을 결코 동의어로 여기지 않았다. 산스크리트로 된 ‘삼십송’에 대한 바수반두 자신의 주석서 속의 게송들을 볼 때, 붓다가 개념을 가리키는 말로 명칭(sankha)이나 시설(pannatti)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세친도 정교하게 용어를 사용했다. 즉 인지(vijnana)를 통해 입수 가능한 것을 표시해 주는 수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알고 사용했다. 하지만 한역이나.티벳본에서는 사유(citta)정신(manas)의식((vijnana)표시(vijnapti)-이 한 묶음으로 동의어로 사용한다.
세친은 상주론과 단멸론에 대한 철학적인 분석을 했다.

2.본말

세친의 철학계승
용수의 ‘중론’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동일성(svabhava)과 차이성(parabhava)이라는 이론들을 비판하는데 거의 전적으로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아비다르마나 ‘금강경’ 같은 이진의 가르침들 속에서 제시되는 해결책에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후에는 특수자(svalaksana)와 보편자(samanyalaksana)를 문제시한다. 우리는 앞에서 ‘법화경’이 어떻게 개념적 절대주의를 옹호했는지에 관해 살펴본 적이 있다. 관념론적이고 초월론적인 ‘능가경’에서는 참다운 인식이란 비개념적인 것이라고 설명됨으로써, 성문과 연각의 인식은 특수자와 보편자에 제한된 것이라는 비난이 자주 거론되었다. 그런데
무착은 ‘아비달마집론(Abhidharmasamucca-ya)’은 ‘능가경’과 똑같은 철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되어왔다. 만약 바수반두가 비개념적인 진리나 실재를 인정하였다면, 우리는 아상가가 자신의 이복동생을 경량부의 입장으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데서뿐만 관념주의자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관념론적인 태도를 실제로는 거부하였다면, 그는 특수자와 보편자라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과감히 맞서서, 개념이 실제적 특수자나 공허한 보편자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해야만 했을 것이다.
실재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sad artha)은 상식일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 실재론의 전제 조건이다.실재는 실재하는 것을 말한다. 개념이 아니라 있는 것 이다. 이 상식적인 실재를 비판하는 것이 세친의 전재조건이다.
세친은 “이 모든 것은 개념일 뿐이다(vijnapti-matram evaitad)\"라고 주장한다. 마트라(matra, ‘오직’, ‘뿐’, 唯)라는 용어의 철학적인 의의에 대해서는 앞에서 경험 대상에 관한 붓다의 설명이나 개념에 대한 그의 정의이다. 개념의 실재화는 ‘개념일 뿐임의 확립(vijnapti-matrata-siddhi, 成唯識)’이라는 이러한 철학적인 성취는 단순한 사변에 의해서가 아니라, 붓다의 전문 분야(buddha-gocara)를 따라감으로써, 즉 인간경험의 심리학을 분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철학적 심리학
세친은 관념을 실재로 전환 시킬 수도 있고 아니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세친의 심리학이다.
모든 관련들은 식(vijnana)에 의존하여 일어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즉각 관념론자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식의 전변(vijnana-parinama)에 관해 말함으로써 이것을 조심스럽게 피해가고 있다. 이 전변 과정은 성숙-사량-대상의 개념화로 전환한다.
성숙은 알라야식과 동의어이며, 식의 모든 종자들(saryabi-jaka)의 전달자라고도 정의된다. 이는 붓다의 근본적 경험론의 접근방식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스티라마티의 찰나설로 알라야식을 설명한다. 하지만 세친의 설명은 알라야식의 전변은 경험세계에 대한 인간의 행위 반응(karma)에 따라 축적된 성향상의 경향들(vasana)에 의하여 결정되는데
그에게 알라야식은 ‘능가경’에서 주장하듯이 ‘본래부터 밝고 깨끗한 것[本性淸淨]’이 분명 아니다. 왜냐하면 a=a+1, a+1+1……. 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자아(atman)와 대상(dharma)이라는 그릇된 개념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알라야식이 대상 개념(upadi)과 장소(sthana)에 의해 확인되거나 고정화되지는 않는다고 주장을 한다. 그것은 그가 알라야식의 맥락 내에서 자유(nirvana)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싶어 한다는 데 있다. 자아가 고정되지 않아야 개념으로 고정화되는 경향이 있는 식의 소멸(vyavrtti)에 관한 언급을 할 수 있다. 세친의 말하는 붓다의 관념은 가장 넓은 의미의 담마[dhamma]이 정신(mano)을 일종의 전제조건으로서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붓다가 정신을 다른 감각 기관들(눈, 귀. 코. 혀. 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관(indriya)으로 간주하기는 했지만 그는 정신을 사량의 기능(mannatiti mano)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세계가 종종 ‘객관적 인력’ 이라고도 불리는 불가항력적인 힘을 ‘지각하는 의식’에게 행사한다는 사실이 결코 부정되고 있지 않다.
세친 문제가 되는 것은 대상의 의식(vijnana)이 아니라, 인지적 자각에 기초하여 형성되는 개념(vijnapti)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제한된 유한성에서 생겨나는 불안감 때문에, 인간은 자주 그것들의 경계를 넘어, 영원한 자아나 불변적 실체라는 개념들을 요청한다. 염오라는 발생을 허용한 자아라는 견해, 자아에 관한 무지, 자아에 대한 자만, 자아에 대한 애착 등의 네 가지 염오를 일으킨다. 이러한 네 가지의 염오는 훌륭한(아라한)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그릇된 견해와 무지와 자만과 애착 등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것은 만약 네 가지의 염오가 제거 될 때에는 자아의 개념이 결코 깨지지 않는 대상의 차원으로 비약되지 않고도 경험적인 차원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결말
우리가 인식한 대상들이 아뢰야식으로 가면 실재와 개념으로 전이 되고 이것을 낱낱이 살펴 알고 제거 하면 대자유(열반)에 이르게 된다. 변계소집성 흔히 말하는 번뇌 곧 6식으로 일어나고 성취하것이다. 이것이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는 세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이다(의타기성)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완전한 실재도 완전한 개념도 아니 것을 알면 바로 깨달음(원성실성)에 이른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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