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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키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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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조 댓글 0건 조회 6,010회 작성일 12-11-1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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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니샤드에서 브라흐만은 전지하고 전능하다는 것이 이야기 된다. 전지하다는 부분은 지혜의 부분이니까. 당연 하지만 전능은 행위 곧 결과와 원인의 발생으로 일어나는 것인데 과연 전능 이 존재할까 大我이르면 전능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행할 것이 없는 것이다. 행위의 요가 처럼 또 다른 수행의 실체가 필료 없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객체의 인입은 실체하다고 우파니샤드에서는 이야기 한다. 하지만 샹키야는 실제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사물이나 보이는 것이나 감각이 아니고 브라흐만에서만 실재 한다고 이야기 한다. 나머지는 가현이다. 가탁도 실재의 그림자 곧 보이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 그림자이다.
대자아는 불감부증 즉 변화가 불생불멸이다. 이는 결국 영원한 생명을 논하는 인간의 이야기다.
원원한 삶을 위하여 인간은 약과 음식과 종교를 선택했다. 과연 영원한 존재가 있을 까. 베다에서 말하는 브라흐만이 많이 투여 되어지는 것 같다. 또하나 영원의 자유를 심도 있게 이야기 한 부분이 있다. 과연 브라흐만의 단계에서 영원의 자유가 존재할까.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실재만 존재하는 자아 의미가 있을까.
여기서 샹키야는 중도의 개념을 끌어 와서 이야기한다. 우파니샤드의 없는 개념이다.
베단타에서는 행위와 지식의 브라만은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왜냐 하면 그차이가 환생의 차이를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실재로 차이가 없다면 삶의 모습이 획일적이여야 하고 변화가 없어야한다. 하지만 고정 실재인 브라흐만에 차이가 있다면 앞에서 말한 불증부감 이나 영 불멸설은 어폐가 있다.

그러면 윤회는 가현이 하고 보이는 것은 가탁인가 가탁이면 실재는 우리 몸에 있는가 몸밖에 있는가 몸밖이면 우리가 말하는 우주와 일체 되어 있는가. 아니면 몸안이면 머리 속에 있는가. 브라흐만을 배고 나머지는 물질이라면 물질에 아트만이 담겨저 있을 수 있나, 깊은 고민이 든다. 사실은 불교에서 항상 느끼는 의문과 질문이 재생된다. 종교가 사상으로 사람의 영혼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것이 제일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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