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佛敎 백제의 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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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흥사 댓글 2건 조회 7,920회 작성일 20-02-26 18:12본문
백제에 불교 佛敎가 전래된 이래 150년 동안의 불교 佛敎 변천은 구체 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뒤 526년 성왕 4년에 겸익 謙益이 인도에 갔다가 돌아 와서 율종 律宗을 시작 하였다.
겸익은 인도의 상가나사 常伽那寺에서 범어 梵語를 배우고 특히 율부 律部를 전공한 뒤 인도승 배달다 삼장 倍達多三藏과 함께 귀국 하였다.
그는 범문 梵文으로 된 율문 律文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번역하여 72권으로 엮었으며 담욱 曇旭과 혜인 惠仁은 그 율에 대한 소 疏 36권을 지어 왕에게 바쳤다.
이는 인도로 부터 직접 가지고 온 원전을 백제인의 손으로 번역 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 있는 일 이었으며 백제 불교 佛敎가 계율 주의적 경향을 띠게 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또한 541년 성왕 19년 에는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열반경등 경의 뜻을 풀이한 의소 義疏와 공장 工匠 화사 畫師 등 불교 문화와 관련된 인물들을 청하여 왔다.
552년 성왕 30년에는 불교 佛敎를 일본에 전 하였는데 그 뒤 많은 승려 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불교 佛敎포교 및 예술의 발달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599년 법왕 1년 에는 왕이 살생을 금하는 영을 내려 민가에서 기르는 조류 鳥類 까지 놓아 주게 하였고 수렵 도구는 모두 불태우게 하였다.
그 이듬해 에는 승려 30명을 배출 시켰으며 왕흥사 王興寺 라는 큰 절을 짓기 시작 하였다.
이 해에 법왕이 죽자 아들 무왕이 즉위한 지 35년 만에 선왕의 뜻을 이어 완공 하였다.
강변 물가에 세워진 이 절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하며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이곳에서 놀기를 즐겼다고 한다.
또한 무왕 때에는 익산에 미륵사 彌勒寺를 창건 하였다.
무왕이 그의 비인 선화 공주 善花公主와 용화산 龍華山 으로 가는 도중에 못 속에서 미륵 삼존불 彌勒三尊佛이 솟아 오르는 것을 보고 왕비의 발원에 의하여 그 못자리에 이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 하는데 지금도 그 절터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석탑이 남아 있어 당시의 웅대 했던 모습을 알 수 있다.
무왕 때의 고승으로는 지금의 수덕사 修德寺에서 법화경을 강설 하면서 삼론 三論을 연구했던 혜현 惠現 등이 있었다.
주서 周書 이역전 異域傳에는 백제에 승려와 사탑이 매우 많았고 불교 佛敎 문화가 대단히 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의자왕 때 백제가 멸망함에 따라 그 명맥은 끊어졌지만, 백제의 불교 佛敎는 일본에서 찬란히 꽃을 피웠으며 현재도 일본에는 많은 흔적들이 남아 있다.
백제 승려 중 해외로 유학한 승려는 겸익과 현광 玄光이 있었다.
현광은 중국에 가서 혜사의 제자가 되어 법화경 안락행품 安樂行品의 법문을 은밀히 받고 법화삼매 法華三昧를 증득한 뒤 귀국하여 고향인 웅주 熊州 옹산 瓮山에서 교화 활동을 크게 펼 쳤다.
그러나 백제 불교 佛敎의 해외 활동 중 가장 손꼽히는 것은 일본에의 전교 활동이다.
일본 인들에게 불교 佛敎를 처음으로 전래하여 준 이는 백제의 성왕 이었다.
성왕은 일본의 서부희 西部姬 에게 달솔 達率 사치계 斯致契 등을 보내는 한편 금동 석가상 1구와 미륵 석불 번개 幡蓋 경론 經論 약간 권을 함께 보냈다.
그러나 일본의 군신 들은 이를 믿고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소가노우마코숙이 蘇我馬子宿禰 만이 이를 존경하여 이시카와가 石川家에 불전 佛殿을 만들고 안치 하였으나 불경과 불구 들의 의미는 알지 못 하였다.
그때 환속하여 하리마국 播磨國에 와 있던 고구려의 승려 혜편 惠便에 의해 발견 되면서 그의 가르침을 받고 세 사람의 비구니가 출현 하였으며 소가노우마코와 시바다쓰 등의 불교 佛敎 신자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성왕은 554년에 담혜 曇惠 도심 道深등 16명의 승려 들을 일본에 보내어 교화 활동을 하게 하였다.
557년 위덕왕 4년에는 또다시 경론과 율사 律師 선사 禪師 비구니 주금랑 呪禁朗 불공 佛工 사장 寺匠 등을 일본으로 보냈다.
당시 일본은 쇼토쿠 태자가 불교 佛敎를 크게 숭상하여 각처에 큰 가람을 세우고 있던 때 였으므로 토목 土木 와공 瓦工 등의 많은 공인이 필요 하였다.
이들 백제인 들은 난바 難波의 대별왕사 大別王寺에 머물면서 불교 佛敎 진흥에 크게 공헌 하였다.
또한 588년에는 불사리 佛舍利와 승려 사공 寺工 화공 畫工 와장 瓦匠 등을 일본에 보냈으며 일본 에서는 선신니 善信尼 등의 승려들이 백제로 건너와서 3년 동안 계율을 배우고 돌아 갔다.
이 때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승은 혜총 惠聰 영근 令斤 혜식 惠寔 영조 聆照 영위 令威 혜숙 惠宿 등이다.
이 백제의 승려들은 일본인 신도에게 직접 수계 의식을 집행하여 일본 승려의 탄생에 일익을 담당 하였다.
601년 무왕 2년 에는 삼론에 뛰어난 학자 이면서 명의 名醫 이기도 하였던 고승 관륵 觀勒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천문 지리 역서 둔갑 遁甲 방술서 方術書 등을 전하는 한편 불교 佛敎 문화 진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이 해에 일본 에서는 승려가 도끼를 가지고 할아버지를 타살한 사건이 일어 났는데 이에 승려들을 감독 할 필요를 느껴 승정 僧正 승도 僧都 법두 法頭 등의 직제를 마련하여 승려의 기강을 세우게 하였다.
이때 관륵은 승정 고구려의 덕적 德積은 승도 백제의 연충 連充은 법두가 되었다.
그 밖에도 일본의 자료에 의하면 담혜 曇慧 일본에 간 해는 554년 일라 日羅 551년 풍국 豐國 587년 혜미 慧彌 609년 법명 法明 655년 의각(義覺)·도장(道藏, 684년 도령 道寧 684년 다상 多常 690년 원각 願覺 690년 원세 願勢 690년 등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인 들의 생활 및 불교 佛敎 문화의 향상에 크게 기여 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법상 法相과 구사학 俱舍學 삼론학 三論學 등에 능했던 도장은 성실론소 成實論疏 16권을 찬술 하였으며 비구니 법명은 유마경 維摩經을 독송하여 병자를 고쳤다고 한다.
백제의 승려 들은 일본의 불교 佛敎를 중흥 하는 주춧돌 구실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문화의 원류 源流를 우리 나라에서 찾게 하는 데 결정 적인 공헌을 하였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소서